<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허수경



그때 차가워진 심장이......


스무 해 전에 추억과 기억의 문을 걸어 잠그고 고국땅을 떠난 시인은 그때부터 자신에게 모든 ‘자연’은 ‘여관’이라는 사실이 될 것임을 미리 직감하고 있었을까. 물리적으로 고향을 떠난 순간부터 그녀의 과거와 미래의 끄트머리가 원을 그리며 되묶여 버리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을까. 추억과 예감이 가역(可逆)의 풍향을 그리며 어지럽게 뒤섞일 때, 시인은 이역만리에서 ‘폭풍 속에 여관 하나를’ 열어 거기에 앉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온 세계가 유목의 바람에 시달리면서 ‘비행장을 떠나’갈 때, 시인은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서 풍성한 슬픔의 세계를 유영(遊泳)한다. 그것은 이를테면 ‘자정의 이불 속을 날고 있는 검은 새’ 한 마리를 어쩔 수 없이 키우는 것이고, 미래의 광활한 하늘에 나비나 잠자리 따위의 유년시절의 곤충들이 날고 있는 것이고, ‘아직 당신이 오지 않았는데’ 과거의 남자와 성교하지 않는 것이고, 또 과거의 연인에게 ‘우린 너무 어린 죽음’ 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래서 죽음이 불가능하다. 미래와 과거가 뒤집히고 겹쳐져서, 이미 차가워진 심장이 뛰고, 아직도 더 차가워질 냉기의 공백이 남아 있다는 것이, 아연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때 낙타가 들어’온다. ‘목마름이 짠 흰빛의 원천’이지만, '해갈의 기척이 저 짠 흰빛에' 있다는 낙타의 속삭임이 이 자발적 추방의 영원한 굴레를 슬프고도 충만하게 채운다.

Posted by Counter-Songwriter 우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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