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정쩡할 수밖에 없는 어떤 서정

<오늘 아침 단어>. 유희경



가능한 서정에 대한 고민. 그 자리는 이미 누추해진지 오래다. 하지만 젊은 시인들은 아직도 이따금씩 ‘서정’이라는 현판이 걸린 이 폐가에, 소득없이 돌아설 것을 뻔히 알면서도, 찾아와 괜히 문 한 번 열어보고 닫아보고 한다. 이렇게 서정과 시대 사이를 오고 가는 길은 참으로 많은 고개 숙인 문학청년들의 피를 빨아먹었을 것이다. 그 길목은 아름다울지 몰라도, 길 위에서 엎어지는 청년들의 삶은 자해에 가까운 몸부림 때문으로 피칠갑이고, 참혹하고, 때로는 비통하다. 하지만 이런 반복 (슬프게도 이것들은 반복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끝에, 넘어지지 않는 자세를 용케도 배웠는지, 묘한 자세로 서 있는 한 젊은 시인이 보인다. 놀랍다. 이런 식으로도 서정이 가능할까. 그러니까, 어정쩡함을 자신의 시적 위치로 삼는 식으로 말이다.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하지 않으려는 것인지 불명확하다. 풍경과 심상과 서정이 각기 예리하게 치고 나오지 않고 서로 뒤섞여 함께 어정쩡하다. 하지만 끝끝내 엎어지지 않고 시의 자세를 지켜나간다는 점에서, 저 시인의 서 있음은 대단하고, 또 의미있다. 저 서 있음은 자신이 결국 서정을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만이 감내할 수 있는 자세이다. 이제는 그 위에서 엎어져야만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어떤 길 위에서 서 있는 시인은 자신의 포즈 하나로 그 오래 묵은 길의 폭을 넓히고 있다. 다음 발자국이 길을 벗어날 것인지 아닌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두고 봐야 겠지만.

Posted by Counter-Songwriter 우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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