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남은 삶의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박형준.

생각날 때마다 울 수밖에. 인생의 어떤 순간에는 남은 삶을 살아갈 세계를 결정해야만 하는 때가 오기 때문에, 그리고 그 세계의 테두리를 알아차리는 순간 곧 포기해야 하는 삶의 여백이 뚜렷해지기 때문에...... 앞으로 생각과 울음은 모두 여기에서 저기로 흘러나갈 것이기 때문에. 어떤 순간부터 삶이 단지 기다림의 자세라는 것을 알게 된 시인은 앉은 자리에서 ‘남은 빛’을 세고 있다. 그것은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 당신과 만나지 않’는, 여백의 자리를 지킴으로 해서 삶을 지키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책상에 강물을 올려’ 놓는다. 책상에 앉아 삽처럼 詩를 파내려 가고자 하는 수직의 견고함이, 인생과 시간처럼 수평으로 계속 흐르며 변화하는 강물과 합쳐져 시인이 결정한 세계의 단단함을 증명하는 아름답고도 무시무시한 이미지로 화한다. 부동을 견지하면서도 여백을 에둘러 아우르려는 조용한 다짐이 그려놓는 세계 속에서 온갖 빗소리와 새벽, 밤과 빛들이 詩의 배를 드러낸다. ‘삭힐 수만 있다면 인생의 식탁을 / 풀처럼 연한 / 그런 불꽃으로 차려야’ 한다는 그는 기다림의 자리에서 그렇게 시를 떠올리고 있다. 그 떠올림만으로 세상의 빈자리들이 뜨거워진다. 마치 밤 시장에 불빛이 들어오듯.

Posted by Counter-Songwriter 우주연




되돌아보아 눈 부신

<질마재 신화>. 서정주.



고 아저씨는 신령이었을까요? 씨부렁대면 수염 긴 노인네들 이 털고 벙글싱글 웃었구요, 아닌게아니라 말 못 하는 바보들도 벙끗싱끗 웃었어요. 까막눈귀라 나는 몰랐을까요. 헐겁게 펄럭이는 옷바짓자락에 풍덩풍덩 빠지던 새, 꽃, 바람, 짐생들, 손 대이는 게 다 詩 인 줄 몰랐을까요. 되돌아 봐야 그 마당 보이는 걸까요. 자세히 귀기울이면 분명 말이 말 같기는 한데 꼭 그렇지 만두 않은 것이 울음 같기두, 노래 같기두, 웃음소리 같기두, 아니면 접히고 개킨 이불 속에 나는 소리 같기두 하구, 병신 머저리 으흐엉 흐엉아 대는 소리 같기두 하구. 아모튼 모조리 다 섞어 넣어 불어 제끼는 입피리 소리 같기두 한 게 나는 도무지 모르겠시요. 얼마나 천치같이 살아 봤길래 저런 얼투당투 않은 소리 막 해제낄까요. 얼마나 천사같이 살아 봤길래 저리 말 같지 않을까요. 싸질러진 사람이면 모두 앉은뱅이 재곤이처럼 살다 가는 이승에서 힘쓰셨소, 욕보셨소. 이제 피 안도는 곳 봄 안오는 곳 피는 흰 꽃에 몇 자 적다가 불려가는 어느 구름 끄트머리에서 편히 쉬소, 아조 쉬소.

Posted by Counter-Songwriter 우주연





어정쩡할 수밖에 없는 어떤 서정

<오늘 아침 단어>. 유희경



가능한 서정에 대한 고민. 그 자리는 이미 누추해진지 오래다. 하지만 젊은 시인들은 아직도 이따금씩 ‘서정’이라는 현판이 걸린 이 폐가에, 소득없이 돌아설 것을 뻔히 알면서도, 찾아와 괜히 문 한 번 열어보고 닫아보고 한다. 이렇게 서정과 시대 사이를 오고 가는 길은 참으로 많은 고개 숙인 문학청년들의 피를 빨아먹었을 것이다. 그 길목은 아름다울지 몰라도, 길 위에서 엎어지는 청년들의 삶은 자해에 가까운 몸부림 때문으로 피칠갑이고, 참혹하고, 때로는 비통하다. 하지만 이런 반복 (슬프게도 이것들은 반복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끝에, 넘어지지 않는 자세를 용케도 배웠는지, 묘한 자세로 서 있는 한 젊은 시인이 보인다. 놀랍다. 이런 식으로도 서정이 가능할까. 그러니까, 어정쩡함을 자신의 시적 위치로 삼는 식으로 말이다.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하지 않으려는 것인지 불명확하다. 풍경과 심상과 서정이 각기 예리하게 치고 나오지 않고 서로 뒤섞여 함께 어정쩡하다. 하지만 끝끝내 엎어지지 않고 시의 자세를 지켜나간다는 점에서, 저 시인의 서 있음은 대단하고, 또 의미있다. 저 서 있음은 자신이 결국 서정을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만이 감내할 수 있는 자세이다. 이제는 그 위에서 엎어져야만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어떤 길 위에서 서 있는 시인은 자신의 포즈 하나로 그 오래 묵은 길의 폭을 넓히고 있다. 다음 발자국이 길을 벗어날 것인지 아닌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두고 봐야 겠지만.

Posted by Counter-Songwriter 우주연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허수경



그때 차가워진 심장이......


스무 해 전에 추억과 기억의 문을 걸어 잠그고 고국땅을 떠난 시인은 그때부터 자신에게 모든 ‘자연’은 ‘여관’이라는 사실이 될 것임을 미리 직감하고 있었을까. 물리적으로 고향을 떠난 순간부터 그녀의 과거와 미래의 끄트머리가 원을 그리며 되묶여 버리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을까. 추억과 예감이 가역(可逆)의 풍향을 그리며 어지럽게 뒤섞일 때, 시인은 이역만리에서 ‘폭풍 속에 여관 하나를’ 열어 거기에 앉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온 세계가 유목의 바람에 시달리면서 ‘비행장을 떠나’갈 때, 시인은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서 풍성한 슬픔의 세계를 유영(遊泳)한다. 그것은 이를테면 ‘자정의 이불 속을 날고 있는 검은 새’ 한 마리를 어쩔 수 없이 키우는 것이고, 미래의 광활한 하늘에 나비나 잠자리 따위의 유년시절의 곤충들이 날고 있는 것이고, ‘아직 당신이 오지 않았는데’ 과거의 남자와 성교하지 않는 것이고, 또 과거의 연인에게 ‘우린 너무 어린 죽음’ 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래서 죽음이 불가능하다. 미래와 과거가 뒤집히고 겹쳐져서, 이미 차가워진 심장이 뛰고, 아직도 더 차가워질 냉기의 공백이 남아 있다는 것이, 아연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때 낙타가 들어’온다. ‘목마름이 짠 흰빛의 원천’이지만, '해갈의 기척이 저 짠 흰빛에' 있다는 낙타의 속삭임이 이 자발적 추방의 영원한 굴레를 슬프고도 충만하게 채운다.

Posted by Counter-Songwriter 우주연



시를 지우는 자리

<뺨에 서쪽을 빛내다>. 장석남.



소박하고 깔끔하다. 간단하고 단단하다. 중언부언하지 않으면서도 먼 길을 돌아온 사람의 기껍고 묵직한 발걸음을, 어떠한 인위도 계량해 맞출 수 없는 정확한 삶의 무게를 한 발 한 발에 싣는다. 범박한 일상이나 자연으로 돌아간 시인의 모습이 독자의 마음속에 불러 일으키는 모종의 혐의들을 산뜻하게 뛰어넘는다. ‘여전히 말을 할 줄 알아서 섭섭한 이름들을 떠오르는 대로 부르는’ 이 시인은 결국 안다. 다음 시, 다음 발걸음은 결국 ‘시를 지우는’ 자리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음을. 삶을 통해 깨달은 숙명적 귀향(歸鄕)에의 체험이 아무런 두려움 없이 일상의 곳곳으로 발을 뻗게 만든다. 대단한 것을 실어 보이겠다는 마음이 없는 만큼, ‘얼어붙은 연못’ 아래에 갇힌 파문들만큼 웅숭깊고 너른 세계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고사리, 작약, 석류, 부뚜막, 도라지꽃밭, 쌀알, 바위, 동백 속으로 들어가서 ‘한칸 방이 되어’ 들어가 앉는다. 비루해지는 일상적 삶에 대해 날카로운 뉘우침은 있지만 째지는 고통은 없다. 결국, 다시, 시를 지우는 자리가 마련될 것을 알기에. 그 자리가 마련되는 ‘떨림 속에 집이 한 채 앉으면 시라고 해야 할지 꽃이라 해야 할지 아님 당신이라 해야 할지’……

Posted by Counter-Songwriter 우주연